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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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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강서성 구강의 성자특별훈련반 옛터
2007년 12월 20일 07시 52분  조회:4717  추천:45  작성자: 김성룡

     위대한 2 5천리 장정을 승리적으로 마친 홍군은 섬북에서 새로운 혁명근거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으며 항일의 제일선에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였다. 중국 동북과 대만을 삼키고 화북을 호시탐탐하는 일제의 야수적인 만행에 대항해 전국 각지에서 항일의 불길이 피여 올랐다.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던 조선혁명가들은 본격적인 항일전을 위한 간부양성에 심혈을 기울렸고 우수한 군사인재 양성에 정력을 기울렸다.

답사팀이 1930년대초 위대한 중국 로농홍군의 활동무대였고 중화쏘베트 소재지였던 서금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서금을 떠난 것은 2004 2 13일이였다. 서금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남창에 가서 15 까지 남창봉기 사적지와 김준섭 렬사에 관련한 답사를 마쳤다. 이제 남은 일이라면 연변의 력사학자 박창욱 교수가 알려준 단서에 따라 강서성 구강시 성자(星子) 있었다는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 옛터를 찾아보는 일이였다.

중앙방송국 남창 주재 기자인 장소룡씨는 성자라는 곳은 남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강시교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남창에서 구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창에서 구강까지 장거리 버스로 3시간 남짓하면 도착한다고 하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우리를 화끈하게 안내해주고 접대한 장소룡 기자와 작별하였다.

일도 일이겠지만 남창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특히 일과출(一鍋出)이라는 독특한 음식이 별미여서 지금도 생각하면 입맛이 돋는다. 그것은 남창에 도착한 첫날 남창봉기 기념관을 보고 뒤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장소룡 기자는 우리를 남창의 전통 음식점으로 안내하였다. 사치하지는 않았지만 민족특색이 짙은 음식점이였는데 가마 3개가 있었다. 일과출이란 가마에서 모든 음식이 나온다는 뜻이다. 매운 국물을 끓이는 가마 3개에 육류와 야채를 오래도록 삶아 먹는 음식이다. 오래 삶을수록 맛이 좋다한다.

자리에 앉고 음식을 주문하려니 주인이 매운 정도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약간 매운 것이 있고 가운데로 매운 것이 있고 아주 매운 것이 있다고 한다. 장소룡 기자는 가운데 매운 것으로 하자 했지만 내가 찐한 것으로 해야 인상도 깊고 진미를 느낄수있다고 하면서 가장 매운 것으로 하자 하였다. 장소룡 기자는 매운 것이 괜찮다면 좋다고 하면서 가장 매운 것으로 시켰다. 가마에는 육류를, 가마에는 야채와 버섯 등속을 다른 가마에는 물고기 등속을 넣어 삶았다.

음식의 가장 특색이라면 아주 매운것이다. 입술과 혀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을 잃을 정도로 매웠다. 같은 매운 음식이지만 요즘 중국에 많이 류행 되는 사천의 불가마와는 가지가 달랐다. 하나는 끓이는 방법이다. 사천 불가마는 끓는 국물에 음식을 적시적으로 익혀먹는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오래도록 삶아 맛이 들게 먹는다. 다른 하나는 사천 불가마는 고추와 기타 조미료로 매운 맛을 돋구지만 여기서는 고추로 매운 맛을 낸다. 좋은 음식에 구미가 동해 술도 마시고 밥도 많이 챙겨먹었다. 장소룡 기자는 술을 잘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맥주를 권했다. 후에 이야기 것이지만 장소룡 기자도 가장 매운 것으로는 처음이였다고 한다.

남창의 독특한 음식 일과출과 장소룡 기자의 따뜻한 인정을 생각하는 사이 차는 감강을 따라 계속 북상하였다. 이따금 산들이 나타났고 아담한 농촌 가옥들이 나타났다. 버스는 서금에서 올때의 장거리 버스보다 깨끗하였고 차에서 비디오도 볼수있었다. 특히 침대좌석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한 앉는 좌석이여서 편히 구강으로 갈수있었다.

파양호 기슭의 구강시는 예로부터 유명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더욱이 강남의 명산 려산(廬山) 끼고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 고장이다. 북방에서 우리는 이번엔 배를 타볼 생각으로 구강에서 배를 타고 무한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철이라 4, 5 매우(梅雨)기까지는 계속 가물어 배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강시 장거리 버스역에 도착한 다음 핸드폰으로 구강시 방송국 정옥향(鄭玉香) 녀사와 련락하였다. 장소룡 기자가 구강에 가면 정옥향씨를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역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여러 사람이 마중 나왔다.

30 녀인이 와서 말을 묻기에 알아보니 정옥향씨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 정옥향씨 뒤로부터 몇사람이 다가왔다. 구강시 방송국 () 국장이 방송국 여러 주임들과 함께 마중 나왔던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 강국장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성자에 가서 답사를 하고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였다.

우리는 정옥향씨의 안내를 받으며 성자로 떠났다. 입가에 보조개가 인상적인 정옥향씨는 방송국 보도부 주임을 맡고있었는데 성격이 비교적 내성적이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구강시 려산구(廬山區) 해회진(海會鎭)으로 달렸다. 정주임은, 남창에서 장소룡 기자의 련락을 받고 성자에 있었다는 특별훈련반에 관련해 알아보았다고 하면서 성자군관학교 자리는 지금 해회진에 속해있다고 말했다.

차가 구강시를 벗어날 방송국 녀성 한명이 올랐다. 구강시 방송국 광고부(廣告部) 채동동(蔡冬冬) 주임이였다. 채주임 역시 30대였지만 정주임 보다 활달해 보였고 화장도 짙게 편이였다. 인사를 하면서부터 그녀는 사이 없이 그냥 말하면서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같았다. 동동이란 이름은 분명 방송이름이다. 그러니 채주임은 방송 아나운서 출신인 같았다. 그만치 언변이 탄복할 정도로 좋았다. 오랜만에 녀성들과 함께 하니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차는 아름다운 려산 주변을 빙빙 에돌아 해회진에 이르렀다. 해회진 정부에서 안내일군들이 나와 길을 인도하였다. 차는 려산 동남부 기슭으로 행했다. 멀리 려산의 유명한 관광명소의 하나인 오로봉(五老峰)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니 참으로 몇몇 로인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듯이 산봉이 하늘에 솟아 있었다. 오로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아래에 푸른 언덕이 있고 언덕을 넘어 산기슭에 이르니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붉은 벽돌로 만든 집들이 나타났다. 부대 병영같은 느낌이였다.

산비탈을 따라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조그마한 광장이 있었고 거기에는 어록비가 있었다. 현지인들과 물어보니 이곳은 지난세기 50년대말, 해회 공산주의대학(共産主義大學)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대학 자리가 바로 항일전쟁시기 국민당 군관훈련단(軍官訓練團) 있었던 곳이다. 해회진과 성자현 현성은 십여리 떨어져있었다. 옛날 해회진은 성자현에 속하였지만 지금은 구강시 려산구에 속해있다. 마을 아래 얼마전 산불이 불탄 자리가 있었다. 페허의 남은 돌기둥이나 벽돌로부터 오래된 건물이였고 비교적 건물이였음을 보아낼수있었다. 현지인들은 이곳에 해방후 공산주의 학교가 있었고 학교는 90년대 구강시로 옮겨갔다고 한다.

책의 기재나 현지인들의 증언에서 분명 이곳이 성자의 특별훈련반 유적지임을 확인할수있었다.

서안사변후 장개석은 려산에서 한동안 휴양하면서 려산 여름철 훈련단을 조직해 간부들 강습시키기로 하였다. 여러 군벌들을 복종시키려면 정치, 군사간부들을 틀어쥐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간부강습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리하여 장개석은 당시 오로봉 기슭의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을 책임졌던 강택(康澤)에게 4천명 학원을 성자현 부근으로 옮기게 하였다.

1937 7.7사변이 일어난 본격적인 항일전쟁을 위해 장개석은 특별훈련을 강화하였다. 이때 조선의렬단 김원봉 단장은 더욱 많은 조선청년단을 훈련시키기 위해 국민당의 진성(陳誠)에게 요청을 구했다. 진성은 강택에게 조선청년들을 중앙군교 특별훈련반에 받아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조선청년들이 성자의 특별훈련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선의용대 출신인 문정일(文正一) 동지의 회억에 의하면 중앙군관학교 분교인 특별훈련반은 강서성 성자현에 있었다. 문정일 동지는 1938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 6 보병과를 졸업하고 그해 10 무한에서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였다.

1937 9월에 1기로 50여명 조선청년들이 특별훈련반에 참가하였고 훈련반의 대장은 황포군관학교 출신인 신악(申岳 일명 리동화)이였다. 조선인 특별훈련반의 대장과 교관은 대부분 조선인이 맡았고 군관학교에서는 부분적인 교원을 보내 군사강의를 하였다.

정세가 어려워지자 훈련반은 호북성 강릉(江陵) 자리를 옮겨 훈련을 계속 진행하였다. 훈련반을 졸업한 대부분 조선청년들은 1938 무한에서 조선의용대에 참가하였고 항일전쟁시기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서 일제와 혈전을 벌였다.

중국의 명산 려산 기슭의 성자현에서 조선인 특별훈련반 유적지를 답사하고 구강시로 돌아왔다. 푸르른 대나무며 노을 비낀 려산의 오로봉은 마냥 아름답기만 하였다.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타고 씩씩한 조선혁명자들의 우렁찬 구령소리가 들려오는 하였고 노을 속에 붉게 불타는 산봉에서 조선혁명자들의 뜨거운 마음을 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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